만년설 만년수

                                  조 승 래

옥빛 호수에는
하얀 빙하를 쓴 검은 산이 거꾸로 서 있다

사라지면 나그네임을 산도 알 것이다
달도 그랬고 해도 그랬으므로

빙하가 만년도 더 되었을 거라는
나그네의 추정은 어렵지 않다

산은 붙박이로 거기 있으라
나그네는 다시 온다

작은 가슴 속
너무 벅찬 알프스 잔상

순환하는 환희의 눈물이
그때는 없었을라고,

❚ 작가 노트

알프스 산자락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쪽에서 관광을 하였다. 저지대의 푸른 잔디와 소, 양들이 있는 알프스와 눈보라와 바람이 많던 중국의 옥룡설산과는 또 다른 감흥이었다. 빙하가 녹은 옥빛 호수에는 하얀 빙하를 쓴 검은 산이 거꾸로 서 있었다. 차가운 아름다움에 반하여 나는 나그네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다.

사라지면 나그네임을 산도 알 것이다. 달도 그랬고 해도 그랬으므로. 기후변화로 더러 녹기도 했지만 만년도 넘은 빙하의 얼음 뼈를 오래 보았다. 작은 가슴 속에 두기에는 알프스 잔상이 너무 벅찼다. 이런 감정을 그 옛날, 혹은 내 전생에 왔을 때에도 환희의 눈물 흘렸을 거라고 추정했다.

옥룡설산에서 썼던 시를 함께 본다.

길은 포개져서 과거가 되고/ 과거 뒤로 과거는 또 쌓이는데/ 만년 빙하 조각나 바람에 쓸려 나갈 때/ 드러나는 가물가물한 기억의 뼈다귀

빙하 속에 갇혀 있던 검은 눈동자 살아서/ 얼음 녹인 개울물 쏟아부으면/ 푸른 수초는 모른 체/ 뒷걸음질로만 언덕을 올라/ 과거를 내려다본다

칼바람 치솟아 오르는 빙하 틈새를/ 백설은 투신하여 구르며 다지며 파고들어/ 수초에게 고한다

고향 찾은 나그네 또 만년을 살아갈 것임을

― 필자의 시집 『몽고조랑말』에서 시 「만년 백설」 전문 인용

❚조승래(趙勝來) 시인은…

▲ 조승래(趙勝來) 시인

경남 함안 출생으로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몽고조랑말』, 『내생의 워낭소리』, 『타지 않는 점』, 『하오의 숲』,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성 어류에 대한 보고서』, 임재도 시인과 공동시집 『공감 여행』 , 김일태 등 7인 공동 시집 『길 위의 길』 등을 펴냈다. 『칭다오 잔교 위』는 2015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에 선정되었고, 계간문예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시와시학 문인회,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동인 및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와 서울문학광장 이사로 활동 중이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