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의 시선
                                 조 승 래

뿔 달린 우람한 소가 쟁기 끌어 지은
벼농사의 결실은 속이 하얀 쌀이었다

예전에는 참 귀한 쌀밥이었는데 탄수화물 섭취 줄이려고
구석에 묵힌 쌀자루에서 바늘귀만 한 벌레들이 나왔다

확대해 보니 장수하늘소를 닮은
소만큼 당당한 모습으로 분주한 그들*도

쌀자루 속에서 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는 것
고만고만해도 어버이, 자식이 있는 대가족일 터

쌀을 가까이 두고 저렇게 살아가는 생명들의 생사에
영향을 미치는 줄 안다고 생각하는 내 등 뒤의
나를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시선을 생각한다

* ‘머리대장’이라고 불리는 벌레의 종류.

❚작가 노트

묵힌 쌀자루를 열어보니 바늘귀만 한 벌레들이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서 확대해 보니 장수하늘소를 닮은 우람한 생물이었다. 쌀을 대야에 부어 보니까 세상에 대군사들이 모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쌀자루 속에서 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었는데 육안으로 보면 고만고만해도 어버이, 자식이 있는 대가족이었다.

‘이놈들 이제 끝장이다’ 생각하면서 쌀을 가까이 두고 저렇게 살아가는 생명들의 생사는 내 손에 달렸다고 설치다가 문득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내 등 뒤의 나를 바라보는 보이지 않는 시선이 느껴졌다.

우주에서 인간이란 하나의 점, 미물이다.

제 땅을 지키느라/ 게 두 마리/ 싸우고 있다

제 집 한 채씩/ 등에 지고도/ 싸울 이유가 있나 보다

갯벌이/ 저리 넓은데

하늘엔/ 쏘아보는/ 괭이갈매기
- 필자의 시 「영역」 전문

❚ 조승래(趙勝來) 시인은…

▲ 조승래 시인

경남 함안 출생으로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몽고조랑말』, 『내생의 워낭소리』, 『타지 않는 점』, 『하오의 숲』,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성 어류에 대한 보고서』, 임재도 시인과 공동시집 『공감 여행』 , 김일태 등 7인 공동 시집 『길 위의 길』 등을 펴냈다. 『칭다오 잔교 위』는 2015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에 선정되었고, 계간문예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시와시학 문인회,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동인 및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와 서울문학광장 이사로 활동 중이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 국내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