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누설

                                               윤 경 희 

가을은 길을 잃었는지 기별조차 없고
왜목리 먼 바다엔 새들이 만장이다
마흔 해 건너서 만난 너와 나의 늦은 해후

가끔 생각날 때면 거짓처럼 안부 묻던
우정도 사랑도 아닌 우린 무엇이었을까
이따금 도돌이표처럼 던지는 너스레웃음

밀물이 빠져나간 멈춘 시간 속으로
봉인된 편지들이 하나, 둘 펼쳐지고
어슬녘 우리의 누설 눈부시게 번져갔다

* 작가노트

▲ 윤경희 시인

사십 여년 만이다. 살면서 그렇게 가슴 부푸는 일이 있었을까. 그리운 이를 만나러 가는 가을 초행길은 끊임없이 설레었다. 어떻게 변했을까. 달려가는 내내 함박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귀밑머리 허연 중년의 나이. 살아 있어서 소설처럼 살아와서 이 아름다운 해후를 맞이하는가. 순수의 세월을 넘어온, 우린 개펄이 남긴 마른 눈물처럼 얼싸안았다. 멈춘 시간은 말없이 밀물을 밀어내고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먼 기억 속의 이야기들을 부려놓았다. 한 장 한 장 봉인된 편지들이 속살을 드러내며 그 가을 우리들의 아름다운 누설은 왜목리 바다의 발목을 밤새 붙들고 있었다.

윤경희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2003년 『생각과느낌』으로 수필 등단, 2003년 중앙일보 지상 백일장 월장원 등, 2006년 『유심신인문학상』으로 시조로 등단하였다. 시집 『비의 시간』, 『붉은 편지』, 『태양의 혀』, 현대시조100인선 『도시 민들레』를 펴냈다. 대구예술상, 이영도시조문학상(신인상) 등을 수상하였고, 유심아카데미, 영언시조동인 등 시조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 기사제공 // 임재도 부울경뉴스 총괄본부장, 소설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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