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그림자

                                               경 현 수

▲ 사진제공 임재수 사진작가

낯선 밤에는 비에 젖는다

못다 핀 꽃들은 음영을 깔았고

깊었던 사랑도 눈을 감고 헤어진다

살아가는 일이 가끔은 빛났으나

모든 시간은 다시 낯선 밤으로 오고

비는 제 소리대로 내린다

▲ 작가노트

▲ 경현수 시인

시간은 무한의 개념이다.
인간이나 우주 속의 만상은 영겁의 시간 가운데, 잠시 신기루와 같이 그 영겁의 시간을 점유했다가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미완의 존재다. 시간의 소유자가 아니라 찰나의 존재일 뿐, 나무의 무늬목 같이 아름다운 꽃을 아로새기고, 사랑을 그리고 이별을 지나고, 기쁨과 슬픔, 분노와 격정도 시간의 그늘 아래 묻힌다.

얼마나 찬란한 밤 이었던가, 낯선 이향에서의 노스텔지어도 비감으로 끌어안았던 아름다운 낯선 밤, 이방인의 푸른 눈빛 금발의 여인, 빨간 지붕의 지중해연안 파란 하늘과 바다도 떠나고, 플로리다의 긴 해안 금가루 모랫벌에서 시렸던 눈물이 이제는 음영을 깔았다. 메콩강가의 수상 마켓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음과 과일을 팔던 여자는 이제는 흑백사진에 저장된 그리움이고 연민이다.

장항선 열차를 오르던 남자의 뒷모습은, 그 후 긴 기적 소리와 함께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시간이 제 몸의 긴 그림자 드리울 때 비로소 알게 되는, 시간은 온갖 그림자를 품에 안고 가고 있다. 그리고 비는 제 소리대로 물길을 흐르고 있다.

▲ 경현수 시인은 ……

강릉에서 출생하였고, 신동집, 정공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멀리서 온 바다』 『조용히 둘 혹은 하나』 『바람은 그 마을에』외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현재 교회연합신문 <기독 시선> 연재 중이고, 현대백화점 시 창작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시의 대중화를 위한 공익지면입니다. 등단시인이라면 누구라도 이 지면을 이용하여 작품을 발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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