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꽃 피다

                                                  옥 영 숙 

가뭄에 죽을둥살둥 땅심을 유지하고
지리한 장마 지나 태풍을 견뎌낸
더없이 볕 좋은 날에
쌀꽃이 오달지다

바람을 기다리는 꽃잎의 오전 열 시
배시시 풀어헤친 치마폭을 반기는 듯
천천히 꽃잎 포개고
화답하는 오후 두 시

미꾸라지 살 오르면 벼이삭 단물 들고
쌀 한 톨에 땀이 한 말 별빛도 한 섬이라
차진 밥, 한 숟가락은
한 다발의 쌀꽃이다

* 작가 노트 

▲ 옥영숙 시인

햇살 좋은 날 모를 쪄내고 품앗이로 모심기를 끝냈다.
지리한 장마 끝에 봇물 따라 떠밀려가지 않고 땅심을 유지하고 사는 게 쉽지 않았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을 벗 삼던 가뭄과 태풍과 싸워 지킨 한 다발의 쌀꽃이 있다.

▲ 옥영숙 시인은 ……
200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사라진 詩』, 『완전한 거짓말』, 『흰고래 꿈을 꾸는 식탁』.
열린시학상, 경남시조문학상 수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경남시조시인협회 감사, 국제펜한국본부 경남지역위원회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