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가 왔다

                                                조 승 래

▲ 사진제공 임재수 사진작가

신문지에 소고기 한 근 싸 들고
삽십 리 길도 멀어 자주 못 찾은
친정어머니 생일 날

어머니 보고파 댓돌에
버선 벗겨진 줄도 모르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신 고모

통학열차 타고 귀가한 누나는
버선이 하얀 장화인 줄 알고
살짝 신고 있었네

잠시 후 고깃국 끓이는 냄새가
굴뚝 높이 솟았네

* 작가노트

▲ 조승래 시인

기차도 버스도 하루 서너 번 밖에 없는 시절, 10km 정도의 길도 멀어서 고모 집에 놀러 가는 때는 방학 때였다. 큰 고모는 할머니와 얼굴이 똑 같았다. 집에서 뵙던 얼굴을 또 뵙게 되니 친숙했고 고모 집에서 노는 것이 정말 좋았다. 은하수라는 냇가에서 목욕하고 연못에서 자라들 보고, 갓 삶아 낸 검은 알갱이 옥수수 먹는 맛이 꿈만 같았다.

먼당이라는 그 동네에서 내려오면 아래동네에서 장사를 하시는 작은 고모도 계셨다. 막걸 리가 날짜 지나면 신 맛이 나고, 버리기는 아까워서 사카린 타서 주셨는데 고종 사촌하고 그걸 마시고 불콰하게 그늘에 앉아 있던 기억 선명하다. 막걸리 맛은 시고 단 줄로만 알았던 초등학교 시절.

큰 고모는 효부상과 열녀상을 받았다. 병든 시부모, 병든 남편 잘 건사하셨다고 귀감이라고 주는 상을 받으신 것이다. 그런 상을 받으시는 고모가 대단한 분이라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상이 본인에게는 한없이 고통스러운 것이고, 모두 참아야 하고 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임을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냇가에서 얼음 깨고 부르튼 손으로 환자의 옷을 씻기를 얼마나 했겠는가.

그런 고모가 일 년에 한 번, 할머니 생신 때는 신문지에 소고기 한 주먹 사들고 “오메”하면서 대문을 열고 뛰어 오시는 것이다. 아기가 되어서 그렇게 보고 싶은 어머니를 안아 보시는 것이다. 견우직녀 만난 것처럼 오작교에 비는 내리고, 아, 벌써 반백년 전 전설 같은 이야기.

 ▲ 조승래(趙勝來) 시인은 경남 함안 출생으로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몽고조랑말』『내생의 워낭소리』『타지 않는 점』『하오의 숲』『칭다오 잔교 위』『뼈가 눕다』등을 펴냈다. 『칭다오 잔교 위』는 2015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에 선정되었고 ≪제3회 영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아노텐금산(주) 대표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현재는 씨앤씨 와이드(주) 대표로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