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의 겨울

                                               이 재 숙   

▲ 수채화 이재숙

속살이 훤히 비치는 산허리
긴 그림자 드리운 앙상한 
나목 한 그루

하얀 적삼 둘러 입은 칼바람이
낯설다

하얀 도화지圖畵紙 위에 느릿느릿 엎드려
시름 잊은
청정한 청록의 소나무도 처연한
대둔산의 겨울

어느 사이
침묵의 하얀 꽃길은

귓볼이 빨갛게 넘나드는 찬바람에
반짝이는 얼음꽃 활짝
웃으며 반긴다 

*작가 노트

▲ 이재숙 시인

겨울 산, 나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입는 하얀 얼음꽃이 좋아 산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나설 때마다 아버지의 등은 나의 따뜻한 아랫목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추위를 많이 타면서도 눈 오는 겨울을 유난히 좋아하는 당신의 아이를 위해 아버지는 부러 하룻길의 산을 다녀오셨던 것 같다.

한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뭐가 그렇게 좋은지를 꼭 물으셨다. 나는 그때마다 ‘그냥’이라고 말씀드리지만 곰곰이 오랫동안 생각하곤 했다. 좋아하는 것의 이유를 지금도 나는 여전히 모른다.

어느 해 겨울, 어쩌다 발이 젖어 아프게 시렸지만(그해 동상 입음) 다시 데려오지 않으실까 봐 말하지 않고 참아서 일을 크게 만들었다. 겨울이면 그냥 저절로 보고 싶고 생각나는 모습이다.

이재숙 시인은 『문학도시』로 등단하였으며, 부산문인협회,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한국현대문학작가연대, (사)부산시인협회, 남구문인협회, 은가람문학회 회원이다. 시집으로 『빈 의자에 귀를 달다』가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신작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의 신작시를 시인이 쓴 작가 노트와 함께 발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