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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문단활동을 하는 오은환 시인이 시집 『어디쯤에서 뛰어내렸을까』를 펴냈다. 지난해에 펴낸 첫 시집 『꽃잎을 숨기고』에 이은 두 번째 시집이다.
그저 바라만 봐도 될까요
산에 올라 붉은 소나무를 만나면
살며시 품에 안겨 봐도 될까요
산에 올라 늠름한 편백나무를 만나면
산에 올라 외로움에 흔들리는
이름 모를 나무를 만나면
등 기대어 숨소리 들으며
그 마음 느껴도 만져도 될까요
우린 고요히 눈 감고 바라보는
위로를 받는 사이
그리웠던 만큼
어떤 슬픔도 없는 그런 사이 될까요
산에 올라 홀로 서 있는 나목을 만나면
- 시인의 시 「산에 올라 나무를 만나면」 전문
자연은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다. 산과 숲과 나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인은 연인에게 속삭이듯 조심스레 나무에게 허락을 구한다. ‘그저 바라만 봐도 되겠느냐’고. 나무가 둥치 가슴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시인은 좀 더 용기를 낸다. ‘살며시 품에 안겨 봐도 되겠느냐’고. 나무의 품에 안겨, 나무에 ‘등 기대고 숨소리 들으며’ 시인은 내면의 언어로 더 깊이 교감한다. 나무의 마음을 느끼고, 마음의 손으로 나무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진다.
그리하여 시인과 나무는 ‘고요히 눈 감고’ 바라보는 ‘(서로가) 위로를 받는 사이’가 된다. ‘그리웠던 만큼’ 둘의 사이에는 ‘어떤 슬픔도 없는 그런 사이’로 완벽하게 교감한다. 인간과 자연의 위대한 상생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편들에 대하여, 이 시집을 엮은 「시선사」 편집주간 정공량 시인은 “오은환의 시는 우리 인간이 자연과 함께 상생해야 한다는 의지를 굳건하게 불태우고 있다.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위대한 지혜의 항목을 일기장에 기록하듯 이번 시집에서 오롯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중략……). 이번 시집에서 오은환 시의 특별함이란 것은 인간이 자연의 위대함에 가기 위한 과정과 그 과정 속에 빚어지는 일들을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의 상생의지”는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에 흐르는 주요한 주제의 하나이다. 시인은 꽃(자연)에게 묻고 꽃은 답한다. 시인과 꽃과의 지극한 교감이고 소통이다.
풀섶에 앉아
꽃에게 물었다
산모롱이 돌아 봄이 오면
꽃으로 다시 올거냐고
꽃이 말했다
너의 숨소리
너의 웃음소리 들려오면
외로워지기 전에
돌아와
서둘러 꽃이 되겠다고
―시인의 시 「풀섶에서」 전문―
이 시집의 시편들에 수록된 시인이 바라보는 자연은 객관화된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언어는 연인에 대한 연서처럼 정갈하고 배려와 치유의 향기를 품고 있다. 연인을 향한 ‘사랑의 문’을 여는 것처럼 ‘너(자연)’에게 ‘온몸으로 향기롭게’, ‘닿아야하겠다’고 한다.
바람 끝에 마른 억새꽃
접을 수 없는 사랑의 문을 여니
문득 못 다한 사랑
흐르는 강물처럼 닿아야하리
너를 보는 마음 애잔해져
세상 끝에서라도 기어이 스며들어
온몸으로 향기롭게
너에게 닿아야하리
― 시인의 시 「너에게 닿아야 하리」 후반부 ―
시인은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나 가난한 산골소녀로 자랐다. 강원도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당시 국어교사로 재직하셨던 소설가 전상국 선생님으로부터 문학 수업과 지도를 받으며 문학소녀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너무 가난하여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서도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공직생활을 하던 남편의 10년에 걸친 암 투병생활을 사랑과 의지로 극복해야 했다.
이런 난관을 헤쳐 나오느라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2015년에서야 『문예시대』로, 2016년 『시선』으로 늦깎이 문단 데뷔를 했다. 그러나 그 늦음을 벌충하듯 지금은 한국현대문학작가연대 회원 등으로 더욱 활발한 문단활동을 하고 있다. 이 시집도 늦은 만큼 보다 더 열심히 써서 매년 한 권의 시집을 내야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에 따라 첫 시집 『꽃잎을 숨기고』에 이어 일 년 만에 펴내는 두 번째 시집이다.
보고 싶은 자리에
당신이 서 있으면 좋겠네
그 목소리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을 때
세상을 향하여
희망과 기쁨을 말하는 사람
당신이었으면 좋겠네
힘들고 지치는 삶이
슬퍼할 이유가 아니라고
자신을 향하여
진실이라고 말하는 그가
보고픈 당신이었으면 좋겠네
당신의 가을 그 곳에
나 서 있으면
당신의 약속으로
가을 그 곳에 함께 가면 좋겠네
― 시인의 시 「가을 그 곳에」 전문 ―
이 시집에 실린 여러 시편들 중 시인은 이 시가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 시는 10년에 걸친 남편의 암 투병생활을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희망’과 ‘기쁨’과 ‘진실’의 끈을 놓지 않고 가슴으로 쓴 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시집의 시편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개인적인 난관과 고통을 극복한 시인이 이를 한 차원 더 높게 승화시켜 타인의 고통과 슬픔까지도 내 것처럼 느끼며 따뜻한 배려와 치유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VMS자원봉사 실적 8300시간>, <부산광역시 여성자원봉사연합회 회장 역임, 고문> 이라는 시인의 프로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시인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자원봉사의 첫걸음을 내딛은 이후 지금까지 평생 동안 봉사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나라에서 여는 큰 행사나 불우이웃을 위해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등 작은 행사에 이르기까지 자원봉사를 하는 오랜 시간 동안에 시인이 직접 겪고 바라본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의 아픔과 슬픔은 그 얼마나 많았을까.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세상을 향해 울분 토하고
낭자하게 부서진
한 잎 낙엽처럼
공원 의자에 종일 앉아 있는
허기진 청춘
그의 의자는 벼랑이다
뛰고 싶어도 뛰어내릴 수 없는
천길 벼랑이다
― 시인의 시 「그의 의자는 벼랑이다」 후반부 ―
그래서 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버린 청년실업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눈물까지 어려 간절하다. 이른바 ‘삼포시대’라 불리며 희망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청춘을 ‘천길 벼랑’이라고 하면서, 이 시집에 붙인 제목처럼, 혹시나 『어디쯤에서 뛰어내렸을까』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내 눈물을 거두고 “기막혀도/ 울지마/ 그만 눈물을 닦아/ 분명한 것은 너에게도/ 길이 있어// (중략) // 너는 사람/ 그러니까/ 힘내(「길고양이의 말」)라고, 천길 벼랑 앞에 내몰린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겠다는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시인은 속삭이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굳어진 절망까지/ 안개 속의 미래까지/ 숨겨진 어둔 그림자까지/ 마음이 닿아 사랑하는 일(「사랑한다는 것은」)”이라고 달래고 또 스스로 다짐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꿈꾸던 사람의 마을에도/ 꽃은 피고 진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아름답고 귀한 것 찾아내지 못한/ 오늘이 두렵고 두렵기만 하다.(이 시집을 내는 「시인의 말」중에서)”고, 가슴 속에 피어있는 시인의 마음 꽃이 세파에 시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낮추고 또 경계한다.
그렇다. 시인이란 ‘다만 외롭게 서서’, ‘숨 쉬고 빛나게 되어 밤을 밝히’는 가로등 같은 존재일 것이다. 언어예술로서의 시의 서정성과 개인적 난관을 극복하고 치유와 봉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인의 시 「가로등」 전문을 소개한다.
참 이상하지
새벽이슬이 내리고 이르게
아침 햇살이 드리워지는
은행나무 푸르름 곁에 아침이 오면
나른하도록 혼미하여 그만 눈을 감아야 되지
눈을 감으면 세상이 보이고
단절된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되었지
소리가 굴러가고 흘러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포근한 어둠이 드리워 채워지는 순간의 그리움
드리워 스며들 때까지의 기다림
드디어 빛의 표정이 두려움 속으로 사라진 후에
드리워진 어둠이 눈뜨게 했고
숨 쉬고 빛나게 되어 밤을 밝히지
다만 외롭게 서 있지
사람들이 어둠을 쉼이라 말할 때
밤은 운명 또는 무정한 삶이라 말하지
참 이상하지
황홀하진 않아도 밤이 좋은 것은
―시인의 시 「가로등」 전문 ―
이 시집은 총 4부 7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교보, 영풍 인터넷 문고 등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시집 / 어디쯤에서 뛰어 내렸을까
지은이 오은환
펴낸 곳 시선사
값 9,000원
― 기사제공/ 임재도 부울경뉴스 총괄본부장, 소설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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