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리

                                                이 숙 경


나뭇잎 져버리자 이름도 저버렸다

잔별을 솎는 바람 무뎌지는 새벽 녘

떨켜에 아로새기는 묵언만 준열하다

팔랑귀 여과되어 오지게 그리운 것들

등걸처럼 굳어진 차디찬 땅심으로

눈보라 퍼붓는 날에는 속속들이 돌아왔다

* 작가노트

▲ 이숙경 시인

늦가을 잎이 다 진 가로수 사이에서 너무 작아 스쳐 지나칠 뻔 했던 설화리라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만나야 할 사람이 기다리는 곳을 세 번이나 놓쳐 버린 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여겨보게 된 설화리라는 지명은 한참 동안 내 발목을 붙잡았다.
젊은 시절 한때 꿈에 부풀어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 바람처럼 떠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눈보라치는 날 안식처로 돌아와야 할 것 같은 설화리.
떨켜에 아로새기는 묵언이 준열한 나무들 앞에서 지난날 교만하고 가볍게 살았던 삶을 속속들이 되돌아보았다. 떠난 지 오래된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설화리에서 나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숙경 시인은 전북 익산 출생으로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조집으로 『파두』, 『흰 비탈』, 시론집으로 『시스루의 시』를 펴냈다. 2015년 대구시조문학상을 수상했고,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작가이다. 현재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대구시조시인협회 이사, 영언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동초등학교 교사이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