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에 와서-화염산

                                                 김 상 환

▲ 그림 정문현

바람은 늘 서역에서 불어왔다. 허물어진 고성과 노새의 방울 소리. 현장법사의 사자후가 들릴 듯 말 듯하다. 오공이 파초선으로 불을 껐다는 화염산(火焰山)에 이르니 더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실눈을 뜨고는 늙은 위구르 악사의 후시탈 연주를 들으며 벽화 삼매에 든다. 화염산은 꽃과 나무, 새가 없이도 아름다운 비단-길이다. 낙타의 그림자, 그 묵언으로 화엄의 꽃이 피어나고 바람은 소리를 낸다. 투르판의 밤하늘, 초생의 달이 손에 잡힐 듯하다.

* 작가노트

▲ 김상환 시인

요즘 같이 무더운 날이면 오래 전 답사한 바 있는 실크로드가 떠오른다. 화염산(火焰山)을 지날 때는 그야말로 절정이었다.《서유기》에도 등장하는 이 산과 근처 유적지를 둘러 본 나는 생각한다. 비단과 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사막 교부들의 금언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예술가란 빛의 내밀한 음성을 듣는 이가 아닐까. 투르판의 밤하늘에 달이 뜬다. 나는 이방인.

김상환(金相煥) 시인은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영남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문학박사).《월간문학》으로 등단해 시집으로『영혼의 닻』이 있다. 그리고『현대시학』,『시와시학』,『대구문학』등지에 다수의 평론을 발표했다.

* 부울경뉴스『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