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김 상 윤

이른 비 내릴 때 울고
연초록 피어날 때 웃고

모두 떠나갈 때 미소 짓는 너는
얼음 위 눈 내릴 때 홀로 아프다

지키고 싶은 약속 하도 많아 물위로 뜨는 별
수도 없이 이별을 겪어
귓가에 근심을 품은 달

상처도 말없이 보듬느라
연잎 무렁무렁 수면을 덮고
가시 속에 흑자색 꽃 피어나네

언제나 그 자리 거기 있음으로
너에게서 늘 향기가 난다

푸름도 갈빛도 탁함도
두 손 벌려 안아주는 품 속

물새들 나란히 졸고
네 숨소리 가끔 들려온다

* 작가 노트

▲ 김상윤 시인

늪을 처음 느낀 건 열 살 때 읽은 백조의 호수라는 만화책에서였다. 지그프리트 왕자와 오데뜨 공주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어린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서양 동화 속 늪에는 마법에 걸린 공주가 있고 무서운 마법사가 있었다. 내가 살았던 영월엔 늪은커녕 맑고 힘차게 흐르는 동강이 있어 늪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고 영화에서 늪은 한 번 빠지면 사람이 결코 살아서 나오지 못하는 죽음의 구렁텅이였다. 현실 속에서 진짜 늪을 만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늪의 아침은 고요했고 물새들이 거닐고 있었다. 연꽃이 피어나고 아름다운 안개와 노을이 있는 새로운 생명의 근원이었다.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그곳에 사는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긴장을 풀지 말고 조심스레 다가가면 늪은 언제나 미소를 보여줄 것이다. 우리 삶의 주변에도 보이지 않는 늪들이 있고 늪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견디고 있음을 지금은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

김상윤 시인은 영월에서 태어나 구룡포에서 소녀시절의 한 때를 보냈다. 2002년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한 고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대구 시인협회 회원이다. 시집으로는『그대 손은 따스하다』(2003), 『슈뢰딩거의 고양이』(2012)가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