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맛돌
 
                                                장 순 덕

  "맨 마지막에 홍예 정 중간에 이맛돌을 콱 박아 뿌리는 기라. 그럼 양쪽 석축 아래로 압축이 가해져 무게가 골고루 분산이 되는 기라."

  청도 석빙고의 홍예 형태의 단단한 석조 뼈대를 보는 순간, 이 엄청난 무게의 돌이 무지개 형으로 반월을 하고 받침도 없이 어떻게 긴 세월동안 무너져 내리지 않고 버티고 있었을까? 입이 벌어져 감탄을 연발하자 같이 동행한 건축가가 설명한 말이었다.
 
  불볕더위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사드 배치 문제를 두고 시끄럽다. 여당과 야당이 밀고 당기는 기싸움에 사드 배치 지역의 민심은 험악하기 이를 데 없다. 지역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마땅히 필요로 하는 시설이지만 님비현상으로 자기가 사는 지역에는 절대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당·ᆞ정·청이 모두 난파선처럼 우왕좌왕한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통령을 바르게 보필해 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큰 도량의 인물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자문해본다.
 
  이열치열이라 했던가. 아스팔트의 열기가 이글거리는 무더위 속에 청도 읍성을 향했다. 늘 가는 청도지만 녹색의 산야는 언제나 나를 반겨준다. 청도에는 내가 배넷시절 살았던 고향의 회귀 본능 때문인지 엄마의 자궁 속 같은 아늑함이 있다. 붓끝처럼 부드럽게 솟아있는 산봉우리가 연달아 어깨를 맞대고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짙푸른 녹음이 눈빛을 당기며 한껏 여름의 정수리를 지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청도만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맥이 아름답게 펼쳐진 고장도 쉽지 않다. 지나는 곳마다 사진의 한 컷처럼 자연이 금방 빗물이 씻겨간 듯 원색의 풀풀함이 넘쳐난다.
 
 청도 읍성은 기념물 제 103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현재 읍성의 축성은 임진왜란에 대비하여 선조 때 쌓은 것이라 한다. 임진왜란 때 동, 서, 북의 문은 불타 없어지고 문루도 없어져 동문의 일부와 성벽의 기저부만 남아 있었으나, 최근에 일부나마 복원이 되었고 청도 군청은 2019년까지 모두 복원할 계획이라고 하니 어떤 위용으로 복원 될지 몹시 기다려진다. 아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연석인 화강석으로 쌓은 협축벽은 굳건하게 말이 없다. 지난 가을에만 해도 붉은 담쟁이 잎이 성벽을 꽃처럼 장식하고 있어 운치를 돋우어 주었지만, 왠지 지금은 말라버린 줄기만 보이고 무슨 연유인지 푸른 잎이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읍성을 나와서 길 건너 석빙고 쪽을 향했다. 석빙고의 모습은 오랜 세월의 무심함 때문인지 덮개는 풍화 되어버리고, 화강석 돔만이 둥글게 휘어진 공룡의 뼈처럼 단단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석빙고는 보물 제323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입구에는 석비가 있어 축조 연대와 동원된 인력 및 공정 기간 등의 기록이 적혀 있으나 육안으로 읽을 수 없을 만큼 닳아서 빛바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이름난 석공 13명과 동원된 백성의 인원이 6천명을 넘는다니 대단히 큰 공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천장 석조 뼈대 위에 큰 반석을 올려 흙을 덮고 잔디를 심어 봉분형태의 지붕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옥개석 하나만 남아있고 원형은 사라졌다.

  전국에서 문화재로 등록된 석빙고 6기 중에 연대가 가장 오래 된 것이라 하니 잘 보호하여 오래도록 후손에게 남겨주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이미 옥개석은 주위에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백성들이 비밀리에 더러 가지고 갔다고도 한다. 그러하니 지금은 무너질 염려로 입구에 주의! 팻말이 서 있었다.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선조들은 겨울철에 얼음을 석빙고에 저장하였다가 봄 여름 추석까지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였다. 빙실 바닥으로 내려가니 평평한 돌이 경사지게 깔려있고 배수가 잘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경사를 따라 물이 외부로 배출된다고 한다. 여기에 짚과 등겨로 얼음을 싸서 오랜 기간 저온을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
 
  빙실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둥둥 떠 있는 흰 구름과 같이, 석조물이 가볍게 허공에 무지개다리를 걸어 놓은 것 같았다. 힘이 허공에 분산이 되어 하나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건축의 돔을 무너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이맛돌의 자리가 새삼 중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맛돌 가운데에는 구멍이 뚫어져 있어 석빙고에 갇힌 더운 열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환기구가 있다. 입구는 서늘한 바람을 불러들이고 천장에는 환기구 역할을 하는 에어백이 있어 더운 공기는 배출 시키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선조들의 지혜가 오늘 날 과학시대와 맞먹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파란 하늘은 태양빛으로 이글거렸지만 그지없이 맑고 깨끗하였다. 거대한 석조 뼈대만 남은 석빙고의 돔을 바라보며 동원되었던 백성의 땀방울이 넋으로 박혀있을 것 같은 안쓰러움에 등 뒤로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석빙고는 워낙 규모가 크고 많은 인력이 동원이 되어야 하고 돈이 드는 일이라, 관아나 조정에서 맡아서 관리하였고 당시에는 일반 백성은 얼음 사용을 꿈도 못 꾸는 일이라 하였다.
 
 문득 어린 시절 시원한 우물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우물 속에 수박이나 먹을 것을 매달아 놓았다가, 저녁이면 건져내어 옆집 장미네 식구와 둘러 앉아 먹었었다. 엄마 무릎에 누워 둥근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유리 조각 같이 반짝이는 별들이 얼마나 가까이 떠 있던지, 누가 저 예쁜 별을 하늘에 매달아 놓았을까 생각하다 손을 뻗으면 곧 쏟아질 것 같은 착각에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었다.

  읍성을 벗어나면서 곰곰 생각에 잡혔다. 우리 일행 중에도 어디를 가나 팀원 중에는 리더가 있고 그중에 드러나지 않지만 항상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리더만 있고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팀은 늘 우왕좌왕 시끄럽기 마련이다. 사회에 있어서도 원로의 자리가 바로 구심점의 든든한 역할이고, 바로 이들이 홍예의 중간지점에 박힌 이맛돌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가정은 또 어떤가? 내가 자랄 때의 구심점은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머니가 항상 구심점의 역할을 했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가정의 중심에서 동분서주하며 우리가 바깥에서 후레자식 소리 듣지 않게 오남매를 떳떳하게 키웠다. 혈기 때문에 늘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들어 오는 큰 오빠를 잘 다독여야 했고, 고집통이 작은 오빠의 역성을 들어 줘가면서도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버릇은 엄하게 꾸짖었다.

  이맛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이 있다. 이맛돌의 어원은 맨 마지막 돌이라지만, 나름 서로 이마를 맞댄다는 생각이 들어 따뜻한 피가 통할 것 같다. 이맛돌은 중심에서 양쪽 균형을 단단히 잡아 줌으로써 힘의 권력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힘을 분산 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맛돌은 홍예 형태를 받치는 아름다운 설치 건축의 구심점이다. 왠지 무지갯빛 조형미가 꿈틀대는 것 같다. 그리고 늘 함께 꼭 붙들고 있어서 서로 해하려 하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지켜주는 든든함이 있다. 이맛돌은 언제 어느 자리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면 나는 여태 살아오면서 사회에서나 조직에서나 어떤 자리에 위치하였던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싶어 새삼 자신의 역할을 되짚어 보니 우유부단하게 살아온 지난날이 부끄러워진다. 어느 자리에서든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나의 역할을 최선을 다하리라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 장순덕 수필가

* 장순덕 수필가는 월간 《문학세계》로 시 등단, 계간 《영남문학》으로 수필 등단을 하였다. 제7회 전국 문학인꽃축제 문학상, 제1회 송암문학상, 제1회 문경새재 시 공모전 수상, 제2회 장계향공모전 수상 등. 현재 경산문인협회 회원, (사)영남문학예술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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