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만장

                                                 이 자 규

나무와 나무 사이의 바다가 유영을 매달았다
아라리 아라 리오
영덕 오십천 길은 괴시리 마을 목은선생이 먼저 갔다
그 끝에서 복사꽃잎들은 줄지어 바다로 이어졌다
그 아래 비워진 강바닥이 물줄기를 물고 있는 뱀도 끌고 갔다
범람하는 허공이 방죽까지 차올라 납작해지는 사람들
만가를 분석해보면 복숭아와 바다의 죽은 체취가 있다

오징어 꿰미 대소쿠리 이고 적삼 밑 쳐진 젖 물렸던 청상은
먼저 보낸 자식 놈 구중궁궐 속 짐은 내려놓았을까

헤엄쳤던 세상 나와서야 곧은 자세가 되는
뼈대 찾아 제 몫을 다하는 것처럼
바다의 영혼을 압축하려면 배를 갈라 사열한 채
나부껴야 한다 가벼워져야 한다
아라리 아라 리오 쌓이는 질량으로 신비롭고 숭고해지는 행렬
때 묻은 나를 씻어 말린 적 없어 오던 길 힐끗 돌아본다
절벽 아래 무수한 언어들이 따라 온다

* 작가 노트

▲ 이자규 시인

여행은 몸으로 읽는 다발성 사건이다. 복사꽃을 보러 갔는데 꽃상여다. 바다를 보러갔는데 비린내 만가다. 바다로 이어진 마른 강바닥 중심에 심줄 같은 물의 맥을 보면서 고려 말의 대학자인 목은 선생의 탄생지를 떠올렸다. 정몽주 정도전의 스승이자 성리학의 기초를 확립한 학자, 고려가 망하였으나 고려조에 충절과 지조를 다해 여생을 바친 것으로 유명한 대학자가 불온하기만한 내 정신에 불을 지폈다. 분홍색이거나 푸른색 바다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서정의 삼각형에 들었다. 살아 있는 한 인격의 스펙트럼이기도 하다.

이자규 시인은 하동 출생으로 2001년 등단하였다. 시집 『우물치는 여자』, 『돌과 나비』가 있고,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로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시 「오징어 만장」이 실린 이자규 시인의 시집 『돌과 나비』를 소개한다.

이 시집에 대하여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우리가 읽어온 이자규 시편들은 시종 내밀하고 잔잔하지만, 단단하기 그지없는 격정과 욕망의 깊이를 언어 뒤편에 숨기고 있는 세계이다. 그렇게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은 잔잔한 끌림으로 가 닿는 존재론적 성찰의 기록으로 우리 기억에 암을 것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펴낸 곳 서정시학(서정시학 시인선 110), 값 9,900원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