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최전선

                                                 정 하 해

여러 해 땅을 놓쳤던 것들
안으로 걸어 잠근 얼굴이 바짝 말랐다

죽은 행운목 뽑아내고
다른 화분도 몇 개, 여물대로 여문 꽃씨 심었다
살아나오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러니까 꼬불꼬불 기어 나오는 불행으로부터의 기척
저 서러운 새끼들

봉숭아는 해가 오는 쪽으로 당장 달려 나가고
나팔 줄기는 아무데나 붙을 작정으로
점점 험악하다

저들의 분주한 삶이 한바탕 휘몰아치겠다는 생각보다
슬금슬금 내 안에서 놀겠다는 살림살이가
어쩌면 족쇄

목숨을 저리 저장해 놓고 쓸 수 있다면
목숨의 부레를 채우기 위한 뜨거운 식사자리 잠깐이면 되는 거다
멀리 떠나 있는 얼굴이 온다
꽃이 온다

잡히는 대로 선반이다 일요목연하게 살 한 점씩 걸어놓고
단시간 폭발시키는
그의 밖은 긴장이다

* 작가노트

▲ 정하해 시인

폭염이 키우는 칠월은 사납다. 살갗이 무르기 시작하면 그건 칠월 깊숙이 도달했다는 증거다. 굳이 따지지 않아도 꽃들은 와서 목숨을 판다. 그들의 행로가 어디서부터였는지는 알바 아니지만, 꽃의 어깨를 걸어본 적 있다면 알 것이다. 스스로 닫고 여는 목숨들이 지금은 지천으로 나 앉았다. 그들의 단내를 맡으며 우리들 역시 한 단의 목숨을 삶에 거는 작업은, 서설 퍼런 나무들과 같아 잠시 빌려 부르는 바람의 후렴은 모든 각도를 꽃으로 조준한다는 사실을 저 최전선의 난간에서 또 깨닫는다.

정하해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2003년 등단했다. 시집으로 『 피다』『 깜빡』『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바닷가 오월을 펴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하고,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일일문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