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의 누각 위에서 

                                                장 순 덕

세월을 켜켜이 묵힌, 녹음에 젖은 물소리가
거친 듯 매끈한 듯 오음의 장단가락을 연주하고
바위 벼랑에 기댄 누각 위에서
선비 내력의 귀한 가객이 시조창을 부른다
 
나뭇잎에 후둑둑 떨어지는 빗줄기처럼
잠시나마 세속을 벗어나 마음의 그늘을
씻김 하고자 마주친 묘한 이 자리에서
천 년 전쯤 아니면 만 년 전에 이미 만난 듯이
우주를 흐르는 득음의 소리를 듣는다
 
어차피 인생이란 평생 짊어져야 할
외로움과 고뇌의 정거장이 아니더냐
오늘의 만남은 과거와 미래를 긋는 인연의 줄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고뇌의 뼈마디를 어루만지고
평생 잊지 못할 울림의 감동을 심어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저 가객과의 별리는 어쩌면
내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곡진한 애별의 정한이랴
오늘 이 자리에서 스치듯
또 하나 인연의 매듭을 실타래처럼 툭
던져주고 사라진 것은 아닐는지

* 작가노트

▲ 장순덕 시인

 이 시는 절친한 문우의 과거의 한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얻어 지은 시이다.
그가 젊었을 적에 한때 마음 적으로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깊은 산을 찾아다니며 사찰에 머물며 수양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산을 오르던 중 멀찍이 누각 위에서 창을 배우는 듯 한 일행을 발견했는데 스승이 됨직한 분의 창을 듣게 되었다.
물론 그 시절에는 창을 자주 듣지는 못했지만 동네 어른들의 시조 창 정도는 듣고 자랐는데, 그 여성분의 소리를 듣자 자신도 모르게 혼을 빼앗겼다고 했다. 동네 어른들이 부르던 그 창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깊고 절절한 소리에 자신을 잊고 빠져들었다는데 평생 동안 울어도 그만큼 울 수 없을 만큼 엉엉 울었다고 하였다. 이유도 알 수 없이 그냥 울었다고 했다. 다만 그 소리가 동네 어른들과 할아버지께서 부르시던 시조창과 무슨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신비한 끌림이었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조상들과 자신과의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인연의 끈 같은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는 것이었고, 그 후로는 다시는 그런 경지의 득음의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의 치유를 하여 오늘까지 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연의 깊은 의미를 재생하여 글로 엮어 보았다.

* 장순덕 시인은 월간 《문학세계》로 시 등단, 계간 《영남문학》으로 수필 등단을 하였다. 제7회 전국문학인꽃축제 문학상, 제1회 송암문학상, 제1회 문경새재 시공모전 수상, 제2회 장계향공모전 수상 등. 현재 경산문인협회 회원, (사)영남문학예술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신작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의 신작시를 시인이 쓴 작가 노트와 함께 발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