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김 사 윤

해바라기 앞에서 그를 닮은 햇살과 마주한 추억이 새롭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한껏 멋을 부린 삼남매는 그렇게 얼굴을 찌푸리고
흑백사진으로 남았다

희망의 상징으로 남은 꽃술은 꿀벌의 엉덩이와 닮아 있다
고호의 무너진 애증의 흐트러짐이 배여든 씨앗처럼
노란 잎들이 넓어질수록 그 끝은 멀어져만 가고
마침내 헤어져 흩날린다.

다시 찾은 어린 날의 그 공원에서 비를 만나려는가.
흐려지는 눈동자를 가로지르는 빗줄기는 마침내
씨앗마다 맺히고 눈물처럼 빗방울이 맺히고
하늘을 올려다보는가.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늘 건들거리며 흔들리고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모르는
값진 세상의 천박스러움에 회의가 남고
기어이 뒤돌아서려는가.

미련스러운 해바라기의 해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해바라기만을 위해서 비춰준 적 없는 해는
조금도 미안해할 이유도 없는 해는
오늘도 바라기를 기억하는가.

* 작가노트

▲ 김사윤 시인

낡은 흑백사진 한 장, 삼남매의 등 뒤로 해바라기가 피어 있습니다. 햇볕에 얼굴을 찌푸린 채 찍힌 어린 삼남매는 그렇게 사진 한 장으로 남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공원을 화자는 다시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아직 남아 있는 해바라기를 발견하고, 추억에 젖어듭니다. 꽃이 커지면 커질수록 잎들은 점점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삼남매의 바쁜 일상을 떠올리고, 고호의 아픈 흐트러짐의 애증을 기억해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해바라기의 해를 향한 순정(純情)에 대해 태양은 미안해할 이유도 없지요. 값진 세상의 천박스러움은 반어적인 표현입니다. 천박해 보이는 세상이 사실은 값진 세상일 수도 있으니 뒤돌아서려 하지요. 미련하리만치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해바라기,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겠지요.

김사윤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2007년 『자유문예』로 시 등단, 시집 『나 스스로 무너져』, 『내가 부르는 남들의 노래』, 『돼지와 각설탕』, 『가랑잎, 별이 지다』,『여자 새벽걸음』등을 발표했다. 제5회 후백 황금찬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