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꽃

                                               공 영 구

한 열흘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향기마저 말라버린 기갈 든 무꽃
골바람 쏘이는 척
주인 기다리며 목 쭉 빼고
잎사귀 흔들다가
다시 고개 숙여
아직도 물기 찾아 헤매는 잔뿌리의 인내 생각하는데
성급하게 성질부리다 말라가는 잎 속
갉아 먹던 다리 많은 벌레 두 마리도
목이 말라 헉헉거리는
오월 말의 무밭이 희끗희끗하다

* 작가노트

▲ 공영구 시인

언제부터인가 여유가 생기면 귀농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한참 지났다.
우연한 기회에 작은 텃밭을 갖게 되어 농사라는 걸 시작했다. 여태까지 농사일은 나와 무관하다고 그냥 보고 넘긴 것이 후회스럽다. 낫질 하나에서부터 삽질까지 모두가 다 생소하고 신기하다. 그런데 작은 씨앗에서부터 새싹이 움트는 모습은 신기하다 못해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뿐인가 열매 맺는 고추랑 가지 토마토와 오이가 커 가는 모습은 새벽잠을 설치게 한다.
시골생활을 익히기 위해 시간나면 밭가를 서성이는 초보 농군의 눈이 점점 프로 농군을 따라가려고 발버둥 친다. 몸은 초보 마음은 프로, 일은 초보 즐거움은 프로, 생산은 초보 먹는 데는 프로…….
열무를 심어놓고 아껴먹다가 꽃을 보게 되어 시 한 수도 얻었다.
사실 물 한 모금도 줄 수 없는 가뭄에 시들은 채소를 볼 때면 말 못하는 짐승보다 더 가슴이 아프다. 내 논에 물 들어가는 것 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하는 옛 노인들의 말이 허풍이 아님을 실감한다.

공영구 시인은 경북 영천 출생으로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엄마의 땅』, 『여자가 거울을 보는 것은 』, 『오늘 하루』, 『달빛 비우기』, 문집 『방앗간집 아이들』(상/하), 칼럼집 『말부자의 완행열차』 가 있다. 대구광역시 문인협회 회장과 대구광역시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민족문학상>과 <대한민국 예술 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대구시 두산 문화센타에서<시 감상 및 창작반>을 지도하고 <일일문학회>를 이끌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