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김 숙 이

그냥 여린 풀꽃으로 살아가려 했습니다
화려한 관심을 받고 싶지만
분복이 있는 법
어차피 울 밑에 서는 편이
아늑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지나는 새들의 노래
바람의 꽃향기
온통 마음잡아 흔드는데
가까이 와서
내민 따스한 손

첫눈이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아야
고운임 만난다지요

그대 손끝에 잦아들어
붉게 물들겠습니다

* 작가노트

▲ 김숙이 시인

여고 시절, 옆방 새댁이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던 추억이 떠오른다. 옆방 새댁은 봉숭아 꽃잎을 뜯어서 백반가루를 섞어 찧었다. 그것을 나의 손톱 위에 얹어 아주까리 잎으로 싸고 실로 챙챙 매어 주었다. 자고 나니 손톱은 붉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봉숭아 꽃물은 주로 늦여름에 들인다. 손톱이 자라면 조금씩 깎여 나간다. 첫눈이 올 때쯤이면 초생 달 모양으로 홍색이 간당간당 남는다. 그때가 모양이 제일 예쁘다. 봉숭아꽃을 물들이면서 알았다. 손톱에 든 꽃물만큼 꽃물들이기를 같이 해주던 새댁의 마음이 더 곱게 물들어 있다는 것을.
　
김숙이 시인은 대구출생으로 시집 『새는 뭍에서도 꿈을 꾼다』(2004).<천상병문학제>에서 시사문단 문학상 대상 수상(2005), 논문집 『백석 시 연구』(2011)를 펴냈다.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학위를 취득 한 후, 현재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일일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