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천

                                                 김 동 원
 

어릴 적 난 홀어머니와 함께, 강가 백로 외발로 선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꽃구경을 갔다 봄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개울이 생기던, 그 화사한 복사꽃을 처음 보았다 젊은 내 어머니처럼 향기도 곱던 그 복사꽃이 어찌나 좋던지, 그만 깜박 홀려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갓 서른이 넘은 어머닌 울고 계셨다 내 작은 손을 꼭 쥔 채, 부르르 부르르 떨고 계셨다 그 한낮의 막막한 꽃빛의 어지러움, 난 그 후로 꽃을 만지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이 왔다

어느새 몸은 바뀌고, 그 옛날 쪽빛 하늘 위엔 흰 구름덩이만 서서, 과수원 언덕을 내려다본다 새로 벙근 꽃가지 사이로 한껏 신나 뛰어다니는 저 애들과 아내를, 마치 꿈꾸듯 내려다본다

* 작가 노트

▲ 김동원 시인

실제로 시 창작에 몰입하면 어느 한 순간 갑자기‘환하게 마음이 열리는’경험을 하게 된다. 리프트에 낀 사고로 두 번의 수술에서도 전혀 몸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나는,「오십천」을 쓸 무렵 거의 신경정신쇠약으로 날마다 혼몽한 상태였다. 극심한 우울과 공황장애는 죽음에 대한 애상에 휩싸이게 했으며, 오로지 숨을 끊고 싶다는 자살 충동뿐이었다. 밤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토록 애타게 부른 적도 없었다. 사람이 극도로 정신이 불안하니 저절로‘어머니’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때 나는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죽기 전, 옛날 초등학생 때 홀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복사 꽃밭을 한 번 가 보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우리 네 식구는 동해 바다 길을 따라 갈매기 울음소리 구슬픈 영덕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밭을 가게 되었다. 어린 아들과 딸의 손을 꼭 잡고 바라본 그 복사꽃빛은 눈물이 어룽져 흘러내려 차마 다 볼 수 없었다. 그 후 나는「오십천」의 퇴고 과정을 거치며, 시작(詩作)이 병 치료뿐만 아니라 인간 구원의 절실한 희망임을 깨달았다.

김동원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로 등단. 시집『구멍』,『깍지』외 다수.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태양셰프」당선. 현재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협시분과위원장, 한국시인협회원.『텃밭시인학교』시창작 교실 운영.

* 부울경뉴스『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