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길수 논설위원

참으로 잔인한 4월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버렸습니다. TV화면에 비쳐지는 막막한 바다, 그 넘실대는 파도 속 깊은 곳으로 우리들의 귀한 아들딸들의 꿈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자존감마저 송두리째 수몰되고 말았습니다.

기적은 정말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요? 매순간 기도하며 지켜보는 전 국민의, 아니 전 세계인의 염원을 외면한 채 정녕 기적적인 생환은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요? 사고발생 보름이 지나가는 오늘까지도 기적적인 소식은 없고,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갑니다.

너무도 엄청난 재난이라 아직 뭐가 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게 하나의 꿈이거나 영화 속 장면이겠지? 싶고, 현실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지경입니다. 적어도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세상에서, 여객선이 침몰해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해야 하는, 이런 참담한 일이 어찌 발생할 수 있는 것인가요?

그동안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반열에 올랐다며, 또 당당히 선진국대열에 진입했다며 우쭐댔던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런 날벼락이 떨어지다니…?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인지라, 우리보다 오히려 바깥세상, 남의 나라사람들이 더 놀라고 기가 막혀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럽습니다. 지금이 우리가 세계 최빈국수준이었던 50여년 이전입니까, 아니면 몇 백 년 전, 국가기능이 미비했던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쯤으로 갑자기 되돌아간 것 것일까요?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세계 모든 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아프리카의 어느 최빈국보다도 더 못한 나라로 낙인찍지 않겠습니까.

21세기 현대국가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나라이니 그런 모욕이나 비하(卑下)하는 시선을 받아도 솔직히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저질러 온 자업자득의 결과이니 누굴 잡고 무슨 하소연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국민들이기보다는, 개인적 사리사욕에 눈먼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라인 것 같습니다. 수백 명의 생명을 수장(또는 실종)시킨 선장이나 선원들이야 입에 담을 가치조차 없으니 아예 말할 것도 없고, 회사관계자들, 관계공무원들, 그리고 정부도 마찬가집니다. 그렇다고 우리 일반국민들은 이런 재난 앞에 떳떳할 만치 각자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온 것일까요. 그것도 아닐 것입니다. 집단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책임은 어찌하겠습니까? 외형적 성장에만 눈먼 나머지 관행과 선례답습에 매몰된 채,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기본도 모른 채 살아온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정말 냉철하고 철저한 원인 규명을 해 나가야겠습니다. 인적구조와 물적 구조를 망라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사회전반의 시스템까지 완전 제로상태에서 개조하는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선례답습형 사후약방문에 그칠 공산이 큽니다.

21년 전, 서해 페리호침몰사고가 바로 답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 사고가 어찌 그리도 판박이로 그때 사고와 닮았는지, 이유를 유추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도 철저한 원인규명을 한다고 했고 제도와 시스템을 고친다고 고쳤습니다. 하지만 제대로의 실천도 없는 사후행위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요? 정부도, 기업도, 사회도, 그리고 일반 국민 모두는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왔을까요.

언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처절한 자기반성과 더불어 제도와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아니 변화라기보다는 주춧돌부터 갈아 끼우는 근본적인 개조가 필요합니다. 관계당국은 물론 우리 국민 모두 이 일에 동참해야함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번만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몇 달 후, 길게 잡아 몇 년 후가 되면. 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듯이 까맣게 잊어버리는 망각의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정말 이를 위해 지속적이고 혁명적인 국민정신개조운동이라도 전개해야겠습니다. 오랜 세월, 관행과 전통이란 미명하에, 우리들의 혈관 속을 흐르며, 용납되어 온 연고주의, 적당주의, 선례답습주의 등을 말끔히 씻어내야겠습니다. 전 국민이 안전감시요원이 되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감사자역할을 함으로써 안전 불감증을 치유해나가야겠습니다..

세월호의 침몰이라는 비보 속에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기사하나를 읽었습니다. 그 기사는, 사고가 일어난 지난 4월 16일, 1차로 구조되어 육지에 오른 학생들이, 친구들의 구조를, 식사도 잊은 채, 애태우며 기다리는 시간, 함께 구조선을 타고 나온 선장과 승무원들이 같은 장소에서 곰탕으로 식사를 하고는 느긋하게 커피까지 마셨고, 선장은 젖은 돈을 꺼내 말리고 있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은, 이게 바로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고도, 파렴치하게 이를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한심한 족속들이 바로 우리들이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가정의 달 5월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을 잃은 참담함에 더욱 눈물지을 희생자유족들에게 정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서로 위로하는 한 달이 되고,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어주는 새 날들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 막막하고 무심한 바다를 향해 염원을 띄워봅니다.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참사 앞에 눈물짓는 국민이 되지 않게 해 주십사!’라고.

글 / 김길수 논설위원

부울경뉴스협동조합